반응형 역사16 박열 박열 제2탄입니다. 1부에 이어서 재밌게 보시기 바랍니다. 연인으로, 때론 함께 조선의 독립을 꿈꾸는 독립운동가로서 둘만의 사랑을 키워나갔다.그들은 함깨 항일 단체를 조직하고 일본 열도를 발칵 뒤집어 놓을 만한 의거를 준비한다.그것은 바로 일왕 암살이었다.하지만 일왕을 암살하기 위한 폭탄을 동경에 반입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몇 번의 시도를 꾀했지만 번번이 실패하면서 계획에 차질이 생길 때쯤 사건이 터졌다.일본 관동 대지진이 발생해 4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던 것이다.이는 치안 유지를 명목으로 일본 내 조선인에 대한 체포와 감시를 강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고, 설상가상으로 많은 조선인들이 말도 안 되는 명분으로 체포되는 상황이 일어나게 된다.박열과 후미꼬 또한 예외일 수 없었다.평소 그들을 눈여겨.. 2017. 1. 19. 박열 가혹한 고문으로 죄수들의 비명이 끊이 지 않기로 유명했던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1926년 3월 12일에 한 쌍의 남녀 혼인식이 진행되었다.이곳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하지만 그날 실제로 그곳에서 한 쌍의 부부가 결혼식을 올렸다.그렇지만 화려한 웨딩드레스도, 하객도 없이 단지 혼인신고서에 서로의 도장을 찍으며 이루어진 보잘것없는 그들만의 결혼이었을 뿐이다.그 두 주인공은 박열과 후미꼬이다.후미꼬는 평소에 조선인 유학생들과 자주 교류하던 일본인 여성이다.그녀가 어느 날 한 조선인 청년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 이유는 그의 외모도, 그의 성격도, 그의 능력 때문도 아니었다.바로 한 편의 시 때문이었다. 나는 개새끼로소이다.하늘을 보고 짖는달을 보고 짖는보잘것없는 나는개새끼로소이다.높은 양반의 가.. 2017. 1. 18. 도모지 어떤 영화에서 눈, 코, 입을 막고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가 죽기 위해 선택하였던 방법은 '백지사'라고 하는 조선시대 형벌입니다. 이 형벌의 또다른 이름은 얼굴에 종이를 붙인다는 뜻의 '도모지' 형입니다. 어딘가 익숙한 이름인데요, 바로 이 도모지 형벌은 우리가 평소 자주 쓰는 단어인 '도무지'의 어원이라는 민간어원설이 있습니다. 조선 후기 때 쓰인 황현의 에는 1864년부터 1910년까지 반세기동안에 이르러서 조선에서 일어난 사건, 사고와 관련된 일화들이 담겨 있습니다. 여기에는 형벌 하나였던 ‘백지사(도모지)’에 대한 설명도 실려 있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근세의 방언에 ‘도모지(都某知)’라는 세 글자가 있다. ... (중략)흥선대원군이 집권하고 있을 때 죄인 이외에도 무.. 2017. 1. 16. 장애인 현대의 우리들은 일상 속에서 많은 장애인, 장애우 들을 접하고, 그들이 받는 차별대우에 대해 듣고 있다. 그렇다면 오래전 장애인, 장애우에 대한 대우는 어떠했을지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먼저 고대 서양의 경우를 보면 살펴보겠다. 고대 철학자들의 어록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장애아들을 양육하지 못하도록 법을 제정해야 한다."-아리스토텔레스 "장애아를 사회에서 격리시켜야 한다."-플라톤 우리가 한번쯤은 들어봤을 만큼 유명한 고대 서양의 철학자들이 생각했던 장애인에 대한 언급들은 놀랍게도 장애인을 아주 심각할 정도로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고대 서양의 인식은 중세로까지 계속 이어졌고, 중세 서양에서는 장애인을 신의 벌을 받은 악한 존재로 여기기까지 하였다. 그래서 이들에 대한 고문과 .. 2017. 1. 15. 이선 사도세자의 이름 : 이선 대표적인 예로, 하루는 사도(이선)가 신하들과 회의를 하고 스스로 결정을 내려 영조에게 보고했더니, 영조는 "네가 왕이냐, 네가 뭔데 결정을 내리는 거냐"라며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합니다. 이에, 사도가 다른 일로 신하들과 회의를 하고 영조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물으니, 영조가 답하길 '네가 그러고도 세자냐, 이런거 하나 처리를 못 해!"라며 또 화를 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도 화를 내고 저렇게 해도 화를 내는 영조의 모습에 사도가 점점 아버지를 무서워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죠. 급기야 청심환을 먹지 않으면 영조를 대면하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단절된 대화, 청심환을 먹지 않으면 대면 불가능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사도는 급기야 미쳐버리면서 다양한 발작 증세를 보입니다 가장 대.. 2017. 1. 14. 사도세자 왕권을 강화하고 애민을 실천하며, 가장 장수했던 왕은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왕, 영조입니다. 하지만 어쩌다 자식인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내몰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지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중전들로부터 자식을 얻지 못한 영조! 하지만 그의 나이 41살에 후궁인 영빈 이씨로부터 자식을 얻었으니 그가 바로 '이선', 사도세자였습니다. (맏아들인 형 효장세자는 10세 때 요절하고 말았습니다.) 요새도 마흔둥이(마흔에 얻은 자식)라고 하면 애지중지하는데, 그 당시 마흔둥이면 지금의 환갑 나이에 자식을 얻은 거나 마찬가지여서, 영조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게다가, 사도세자(이하 사도)는 어려서부터 그 총명함이 남달라 매우 영특했다고 하는데요, 잘 알려지지 않은 사도의 영특함을 몇 가지 말씀드리도.. 2017. 1. 13. 이전 1 2 3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