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

도모지

by Wa_rranty 2017. 1. 16.
반응형




어떤 영화에서 눈, 코, 입을 막고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가 죽기 위해 선택하였던 방법은 '백지사'라고 하는 조선시대 형벌입니다. 이 형벌의 또다른 이름은 얼굴에 종이를 붙인다는 뜻의 '도모지' 형입니다.


어딘가 익숙한 이름인데요, 바로 이 도모지 형벌은 우리가 평소 자주 쓰는 단어인 '도무지'의 어원이라는 민간어원설이 있습니다.



조선 후기 때 쓰인 황현의 <매천야록>에는 1864년부터 1910년까지 반세기동안에 이르러서 조선에서 일어난 사건, 사고와 관련된 일화들이 담겨 있습니다.


여기에는 형벌 하나였던 ‘백지사(도모지)’에 대한 설명도 실려 있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근세의 방언에 ‘도모지(都某知)’라는 세 글자가 있다. ... (중략)

흥선대원군이 집권하고 있을 때 죄인 이외에도 무고한 사람에게 죄를 씌워 체포하는 것 등으로 처형된 사람이 1천여 명이나 되었는데, 포도청의 형졸들도 살인하기에 염증을 느껴, 연좌된 죄인의 얼굴에 백지 한 장을 붙이고 물을 뿌렸다. 그러면 죄수의 숨이 막혀 순식간에 죽곤 하였다. 이를 해석한 사람의 말을 들으면, 도모지(都某知)라는 단어는 도모지(塗貌紙)라는 형벌인 것이다.


황현의 글에 따르면 '도무지'라는 단어는 보지도 듣지고 말하지도 못하고 죽음을 맞는 도모지 형의 '어찌할 수가 없는 상황'이 파생되어 점차 독립된 단어로 쓰인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한지는 가볍고 얇은 종이일 뿐이지만 탄력이 좋고 질기며 물을 흡수하면 밀착력이 높아집니다. 특히 물을 묻혀 세네 겹을 쌓으면 산소가 투과하기 어렵게 되지요.


종종 죄인의 얼굴에 한지를 붙인 뒤 물 대신 막걸리를 붓기도 했다는데요. 걸쭉한 막걸리의 입자는 물보다 크기 때문에 한지의 입자 사이사이에 들어가 산소 투과율을 더욱 낮춰 질식이 보다 빨리 진행되습니다.


인간은 산소가 부족하면 중추신경계, 심혈관계, 호흡계뿐만 아니라 간과 신장에 이르기까지 전신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저산소증이 오기 시작하면 뇌혈관은 확장되며 혈류량이 늘어 두개강내압이 많이 올라가 정신이 혼미해지고 의식이 소실되고 혈압은 떨어지게 됩니다.


이때 신체는 극한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엔도르핀 호르몬을 마구 내뿜죠. 엔도르핀의 강력한 진통 효과 덕에 인간은 죽음의 문턱에서 고통을 잊고 쾌감을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소설 '파이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젖은 수건을 얼굴 위에 놓고 일부러 환각 상태에 빠집니다. 그만큼 질식이라는 것은 인간의 뇌와 신체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합니다.


매우 황홀한 쾌감과 쾌락을 주면서도 외마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게 하며 매우 끔찍한 고통을 가하는 형벌입니다. 얇디 얇은 종이 몇 장으로 피를 보지 않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이 잔인한 형벌은


조선시대 당시에 도덕적인 규범을 어긴 자식에게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며 시행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전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상황에서 부정적인 사실을 강조할 때 쓰는 '도무지'. 그 어원을 알고 나니 더욱 처절하게 그 의미가 이해됩니다.


형벌은 사라졌지만 단어는 아직도 남아 답답한 우리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단어 도무지입니다.  오늘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일이 있으셨나요?

반응형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열  (0) 2017.01.19
박열  (0) 2017.01.18
장애인  (1) 2017.01.15
이선  (0) 2017.01.14
사도세자  (0) 2017.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