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혹한 고문으로 죄수들의 비명이 끊이 지 않기로 유명했던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1926년 3월 12일에 한 쌍의 남녀 혼인식이 진행되었다.
이곳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그날 실제로 그곳에서 한 쌍의 부부가 결혼식을 올렸다.
그렇지만 화려한 웨딩드레스도, 하객도 없이 단지 혼인신고서에 서로의 도장을 찍으며 이루어진 보잘것없는 그들만의 결혼이었을 뿐이다.
그 두 주인공은 박열과 후미꼬이다.
후미꼬는 평소에 조선인 유학생들과 자주 교류하던 일본인 여성이다.
그녀가 어느 날 한 조선인 청년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 이유는 그의 외모도, 그의 성격도, 그의 능력 때문도 아니었다.
바로 한 편의 시 때문이었다.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하늘을 보고 짖는
달을 보고 짖는
보잘것없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높은 양반의 가랑이에서 뜨거운 것이 쏟아져
내가 목욜을 할 때 나도 그의 다리에다
뜨거운 줄기를 뿜어대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후미꼬의 시선을 빼앗아버린 바로 그 시다.
내가 찾고 있던 사람, 내가 하고 싶었던 일, 그것은 틀림없이 그 사람 안에 있습니다.
그 사람이야말로 내가 찾고 있던 사람입니다. 도대체 누가 쓴 시 인지 후미꼬는 그 사람을 찾았다.
그 시의 주인공은 박열이다.
이름만큼이나 젊은 열정으로 똘똘 뭉쳤던 조선인 청년이었다.
식민지 교육 따위는 거부하며 무정부주의를 공부하기 위해 일본으로 유학길에 올랐던 아나키즘 사상의 청년이다.
하지만 의열단, 흑우회, 흑도회, 불령사, 항일단체조직, 항일모임주도, 제국주의 규탄 등 유학생이라는 신분 뒤에 감춰져있던 그의 진짜 모습은 바로 독립운동가였다.
일본인과 조선인, 그것도 독립운동가와의 만남은 후미꼬가 바랐던 일은 아니었고 이뤄질 수도 없는 일이었다.
박열 역시나 후미꼬의 구애에 차갑게만 대하였다.
하지만 지독하리만큼 포기를 몰랐던 후미꼬의 구애가 이어졌다.
박열이 후미꼬에게 말했다.
후미꼬 당신은 일본인이면서 내가 무엇을 하려는지는 알고 그러시오? 더 이상 내게 접근하지 마시오.
이에 후미꼬가 답변한다.
박열씨 저는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하려는 것이 일본 제국주의에 반기를 드는 것이라는 걸 압니다.
저 또한 당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일본인일 뿐입니다.
후미꼬는 일본인이었지만 불우했던 유년 시절을 보내며 일본 제국주의의 권력과 부패의 부당함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던 일본의 자유 여성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실제로 부모 모두에게 양육을 거부당해서 출생신고를 하지 못하고 학교를 제때 다니지 못하는 등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고, 친척들에게 갖은 폭행과 성적 학대를 당했었다.
후미꼬의 진심 어린 고백에 결국 박열도 마음이 움직였다. 그렇게 독립운동가와 일본인의 사랑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