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으로 가는 첫 여행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까운 나라를 이제서야 여행하는 것은 이유가 있었다.
그간 나는 학생이었고, 용돈으로 물가가 비싼 나라를 여행하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굳이 가더라도 경제적으로 자유롭지 않았다.
나는 물가가 확실히 싸서, 내가 학생으로 감당할 수 있는 경제적 한도에서 자유롭게 여행하는 게 좋았다.
그러다 보니 그냥 가서 존재하기만 해도 고생스러운 나라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시절에만 가능한 활기차고 발랄한 경험이기에 나쁘지 않았다.
또 나중에 돈을 벌면 자연스레 비싼 나라들에도 갈 기회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느덧 나는 직장인이 되었고, 월급이 통장에 실제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돈을 벌어 맨 처음 가기로 한 곳이 바로 일본이었던 것이다.
이전 여행길과 친구들에게서 일본에 대해 참 많이 듣곤 했다.
공통된 의견은, 볼 것이야 그럭저럭이지만, 먹을 것 하나만은 정말 기가 막힌다는 것이다.
길거리 어떤 식당에 들어가도 신선한 회나 담백한 고기가 넘치고, 달콤한 양념과 깊게 우려낸 국물은 늘 일품이며, 무엇보다도 시원한 생맥주가
우리나라와는 격이 다르고, 심지어 그리 비싸지도 않다는 말을 귀에 박히도록 들었다.
늘 개발도상국에서나 통 크게 주문하던 나는 이제 그것들을 내 월급으로 넉넉히 먹을 수 있었다.
나는 삼박 사일간 오로지 먹다 오겠다는 일념 하에 공항으로 향했다.
최대한 일본에 있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기 위해 여행을 며칠 앞두고 일부러 조금 굶었다.
친구들에게 일본 여행을 털어놓으니, 그 동네는 편의점 도시락까지 다 맛있으니 뭐든 배 터지게 먹어야 한다고 들쑤신 탓이었다.
이륙부터 허기진 느낌이 들었고, 마침 저가 항공이라 전혀 먹을 것을 주지 않았다.
비행기 창을 통해 보이는, 반짝이는 열도의 불빛이 마치 김이 모락거리는 큰 주방처럼 보였다.
기대감과 공복감을 동시에 안고 착륙하자 나는 이제 조금 정신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본에서 맨 처음 먹는 밥이 공항 밥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었다.
공항 밥은 보통 맛이 없지 않은가!
나는 처음 보는 일본어 안내문 사이를 헤치고 시내로 가는 기차를 우여곡절 끝에 찾았다.
큰 캐리어를 끌고 어깨에는 무거운 가방까지 짊어진 나는 숙명처럼 기차에서 많은 사람들 사이를 부대끼며 시내로 향했다.
이 고난과 역경만 이기면 젖과 꿀이 흐르는 거리가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짐을 들고 식당에 들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숙소로 안 가고 밥부터 마구 먹은 다음 포만감으로 게스트하우스에 당당히 입성하리라 생각했다.
드디어 나는 도심에 있는 유흥가에 도착했다.
늘 하던 버릇대로 알아본 식당은 없었다.
어차피 친구들이 어느 식당에 들어가더라도 맛있다고 했다.
배가 고파서 눈알이 빙글빙글 돌았다.
메뉴를 고민하다가, 처음 일본에 왔으니 상징적으로 좀 비싸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고기를 먹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던 내게 한 간판이 쉽게 눈에 띄었다.
한자로 '굽는 고기'라고 쓰여 있었고, 화로 그림이 곁들여 있었다.
역시 글자를 알면 남의 나라에서도 이렇게 메뉴를 골라서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뿌듯한 마음으로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섰다.
식당에 들어서자 고기 굽는 냄새가 확 코를 찔렀다.
역시 제대로 찾아온 것이다.
캐리어까지 다 들고 쭈뼛거리던 내게 입구에 붙은 빅뱅의 포스터가 보였다.
말로만 들었던 한류가 실제로 일본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직접 확인하자 왠지 조금 뿌듯했다.
곧 점원들은 친절하게 나를 고기 굽는 자리로 안내했다.
일본은 혼밥이 대세라던데, 혼자서 고기를 구울 수 있게 잘 마련된 자리였다.
역시 일본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뉴를 황급히 펼치자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운 고기 사진이 가득했다.
일본어라 오래 보고 있어도 자세히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고, 무엇보다 배가 고파 나는 사진만 보고 즉시 호기롭게 주문했다.
맛있어 보이는 양념 고기를 하나 주문하자 생고기가 눈에 띄었다.
역시 일본은 고기를 신선하게 날로도 먹는 것이구나.
나는 생고기와 공깃밥도 주문했다.
그리고 맥주 한 잔도 추가로 주문했다.
일단 이것까지 먹으면 배가 부르겠지, 안 부르면 더 사 먹어야지.
하여간 정말 배불리 먹어야지.
잠시 종업원이 세팅하고 있는 동안 나는 잠시 고개를 돌려 옆 테이블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제법 취했는지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있었다.
나는 일본 사람들은 무슨 술을 마시는지, 조금 더 유심히 보았다.
그들은 조금 큰 잔에 담긴 탁한 술을 마시고 있었다.
탁주처럼 보였다.
나는 머릿속으로 쌀로 담근 술의 주조 과정을 정리했다.
쌀을 독에 넣고 발효시키면 위쪽은 맑은 청주가 되고 아래쪽은 탁주가 된다.
그들에겐 대량으로 생산되는 사케가 있었고, 그만큼 자연스럽게 생산되는 탁주를 소비하고 있는 것이었다.
역시 우리나라와 같은 쌀 문화권이었다.
먼저 생으로 된 고기가 나왔다.
가격이 제법 비쌌는데, 날로 먹는 고기이기 때문인지 양은 매우 조금이었다.
생각보다 일본의 물가가 전반적으로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고기는 참기름에 버무려 깨를 뿌린 형태였고, 약간의 채소와 양념이 같이 나왔다.
나는 양념으로 생고기를 버무렸다.
얇은 생고기는 그럭저럭 먹을 만했지만, 간장이 베이스라 매우 짰다.
반찬으로는 '기무치'가 나왔다.
우리나라에서 먹는 김치보다는 확실히 달고 향이 조금 이상했다.
나는 배가 고파 얼마 안 되는 음식을 일단 게 눈 감추듯 먹어버렸다.
대단히 짜고 느끼하고 달았다.
역시 처음 먹는 음식엔 길들여질 필요가 있었다.
나중엔 이것들이 맛있어지겠지.
이어서 맥주와 굽는 고기가 나왔다.
고기 판은 한국과 비슷했고, 양념된 고기 양은 이번에도 적었다.
나는 판 위에 고기를 한 번에 다 올리고 즉시 추가로 일 인분을 더 주문했다.
배가 고파서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판에서 고기가 익는 연기가 나자, 입가심으로 차가운 맥주를 마셨다.
묘하게 닝닝한 느낌이었다.
병맥주로 적응할 것 그랬나, 생맥주가 우리나라와 별 차이가 없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막 익은 고기를 급하게 입에 넣었다.
간장 맛도 나고 마늘 맛도 났다.
한국의 양념된 고기와 비슷했지만, 딱 절반쯤 맛이 부족하고 식감이 물컹했다.
고기를 양념째로 맹물에 재워 눅진하고 싱겁게 만든 다음 이상한 향을 넣은 것 같았다.
확실히 뭔가 맛을 구성하는 존재가 빠져있는 느낌이었다.
순간 나는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시 맥주를 쫙 들이켰다.
또 닝닝했다.
어제도 먹었고, 그저께도 먹었던 물 같기도 탄산 같기도 한, 꼭 각이 네모지게 진 큰 통에서 쏟아질 것 같은 심심한 맥주의 맛이었다.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입구를 보았다.
동영배가 카스 500잔을 들고 세상 시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 손에 들린 것과 같아 보였다.
나는 다시 옆 테이블을 보았다.
그들이 먹은 술병 라벨에 '막걸리'라는 한국어가 선명히 보였다.
나는 내 테이블 위로 시선을 돌렸다.
삼 일 전쯤 집 앞 고깃집에서 봤던 불판의 생김새였다.
한 치도 다르지 않고 똑같이 생겼다.
마치 내가 방금 있던 곳에서 같이 비행기를 타고 온 것 같았다.
그렇다.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이곳은 한국 음식을 재현하는 데 무참하게 실패한 한국 식당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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